정기상여금의 통상임금 포함 여부에 대한 법원의 판단이 엇갈리고 있다. 대법원이 “정기상여금은 통상임금에 포함된다”고 판결하면서 논란에 마침표를 찍은 듯했지만, 기존 임금협약을 두고는 “경영 사정을 고려해야 한다”고 단서를 단 게 혼란을 낳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41부(재판장 정창근)는 지난달 29일 아시아나항공 전직 승무원 이아무개(39)씨 등 27명이 낸 통상임금 소송에서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반영한 추가 수당 등 9959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씨 등이 2007년 노사협약을 맺을 당시 상여금은 통상임금에 포함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지난해 대법원 판례를 적용해 “상여금이 계속적·정기적으로 지급되고 금액이 확정돼 있어 통상임금에 해당한다. 통상임금에 속하는 임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한 노사합의는 원칙적으로 효력이 없다”고 밝혔다. 아시아나항공은 경영에 큰 부담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증거가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42부(재판장 마용주)도 지난 4월 고용노동부 고용안정센터 무기계약직 직원 93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통상임금 소송에서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으로 인정했다.

이런 판결들은 지난해 12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 따른 것이다. 당시 대법원은 이 판결 전 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하는 노사협약이 있었더라도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해 기업에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이 초래되는 경우는 신의칙에 위반되므로 허용될 수 없다”고 밝혔다. 신의칙은 서로 신뢰를 배반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민법의 대원칙이다. 즉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이 예상된다면 예외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대법원 1부(주심 고영한 대법관)는 지난달 29일 이 ‘신의칙’을 이유로, 한국지엠(GM) 노동자 5명이 낸 소송에서 상여금을 통상임금으로 인정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하면 노사합의로 정한 통상임금을 훨씬 초과할 여지가 있어 보인다”며, 이제 와서 상여금을 통상임금으로 인정하는 게 신의칙에 위반되는 게 아닌지 다시 심리하라고 판결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해 미국 방문 때 딘 애커슨 지엠 회장을 만나 “해결”을 약속한 사안으로, 대법원은 결국 박 대통령의 약속을 지켜준 셈이 됐다.

김태욱 민주노총 금속노조 법률원 변호사는 “지난해 대법원 판결 당시 학자들 사이에서는 ‘통상임금 판결이 로또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는데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우연한 상황과 외부적 요인에 따라 통상임금 인정 여부가 달라지게 돼, 법적 불안정성이 크게 높아지게 됐다”고 말했다. 이경미 기자 kmlee@hani.co.kr